땅굴레터 Ep.4
좋아하는 건 적성이 아니다?

좋아하는 게 적성이 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마음으로는 참 끌리는 말이긴 한데... 머리로는 자꾸 의심이 간다. 그렇게 눈에 띄게 좋아하는 게 있는 사람도 소수고, 당장에 입에 풀칠하기 바쁜데 자칫 한가하고 속 편한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게 정말 적성이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우연히 본 영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세 명의 뇌과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셰프가 재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100점 중에 80점까지는 학습으로 가능한데, 나머지 20은 타고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타고남을 판가름 하는 건… ‘차이를 구분해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요리로 따지면 음식의 짠 맛이 진간장의 짠 맛인지, 양조간장의 짠 맛인지, 함초소금의 짠 맛인지 미세하게 분간해낼 수 있는 감각.
좋아하는 건 적성이 아니에요. 까탈스러워야 적성이죠.
심리학자 김경일님이 하신 말.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띵 했다.
시작은 좋아서 했지만, 얼마 안 가 흥미가 떨어져 버린 것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시작했던 건,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면 지속할 이유가 사라졌다. 좋아하는 게 필요조건일지는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기만 하는 수준에서 끝나면?
그건 동호회에서 취미로 즐기면 된다.
하지만 내 업이 되려면… 까탈스러움이 필요하다.
나는 어디에 둔감하고, 어디에 예민한가
이 얘기를 들으니까 대학생 시절 생각이 났다.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모션그래픽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모션그래픽은 TV 프로그램 인트로에 나오는 그래픽 영상 같은거라고 보면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주위 친구들이 그쪽으로 가니까,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움직인다는 게 뭔가 재밌잖아- 싶어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그 때의 얄팍한 경험치 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적성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다행히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모션, 즉 움직임이라는 것 자체에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슉 움직이든, 뿅 움직이든, 치지직 움직이든, 파바박 움직이든… 솔직히 나에게 대단한 차이는 없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미세한 움직임들을 구분해 내는 역량이 부족했고 그냥 이것도 저것도 다 괜찮아 보였다… 까탈스럽지 못 했다. 까다로워질만큼 좋아하지 않았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항상 남들보다 레이더망을 세우고
예민하게 보는 것은 뭐였을까?
나는 움직임 그 자체보다는, 보여지는 것 이면의 심리에 항상 더 관심이 있었다. 공간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어떤 경험에서 좋은 인상을 느끼면, 내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팝업스토어에 가면 입구에 들어갈 때 보이는 러그부터, 도어벨 소리는 어땠는지, 어디에 어떻게 물건들이 배치됐는지 - 그리고 어떤 콘텐츠가 인기가 많으면 사람들이 어떤 심리를 자극해서 주목을 받는 건지… 통합적인 인상 속에 설계된 수많은 작은 요소들에 대해 떠들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분석충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ㅠ)
스스로의 예민함에 대해 곧바로 생각이 안 나더라도… 일단 둔감한 분야를 소거법으로 지워나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명확한 답을 찾아내진 못하더라도, 오답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이전보다는 더 또렷해질 수 있다. 내가 모션그래픽이라는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는 옵션을 지운 것처럼.
제네럴리스트의 뾰족함
평범한 보통의 사람 A는 무언가에 흥미를 느꼈다.
‘나는 이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파고들어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일정 단계를 넘어가면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소비자로서 즐기는 것과, 생산자가 되어 밥벌이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쉬웠던 것이 어려워지고 좋아하는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커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이렇게까지’라는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 게 문제지만…
일류 셰프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나처럼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잘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네럴리스트라면? 재능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이건 태도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지랄맞게 1%의 까탈스러운 천재가 될 필요는 없지만, 경쟁 사회에서 사업이든 크리에이터든 독립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아무리 제네럴리스트라도 최소한의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여기서 무기이자 생존을 위한 기본기가 될 수 있는 게 브랜딩과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네럴리스트의 뾰족함은,
T자형이라기 보다는…
볼록 철(凸)형 같다.
한 분야가 가파르게 두드러지는 T 대신, 약간의 뾰족함과 함께 탄탄한 기본기를 무기 삼는 제네럴리스트.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기에, 애매한 T가 되어버리면… 그 뾰족한 분야를 AI가 대체하게 되면 설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얇상한 [ T ] 에 비해 [ 凸 ] 이건 뭐랄까. 스모 선수마냥 듬직하다. 세상의 풍파에도 쉽사리 넘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서 하단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기본기는…
본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전략을 짜는 것(브랜딩),
그리고 그걸 타인에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콘텐츠)이 아닐까?
좋아하는 마음도 당연히 필요하고-
여기에 까탈스러움, 후천적 집요함, 기본기가
모두 어우러졌을 때,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한 것 같다.
참고가 된 영상 첨부! (배울 게 많고 재미있는 채널!! 👀)
한국 요식업이 전세계의 트렌드를 이끄는 이유 | 심리학자 김경일, 뇌과학자 장동선, 쉐프 홍신애
땅굴레터 Ep.4
좋아하는 건 적성이 아니다?
좋아하는 게 적성이 될 수 있을까?'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마음으로는 참 끌리는 말이긴 한데... 머리로는 자꾸 의심이 간다. 그렇게 눈에 띄게 좋아하는 게 있는 사람도 소수고, 당장에 입에 풀칠하기 바쁜데 자칫 한가하고 속 편한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좋아하는 게 정말 적성이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우연히 본 영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세 명의 뇌과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셰프가 재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100점 중에 80점까지는 학습으로 가능한데, 나머지 20은 타고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타고남을 판가름 하는 건… ‘차이를 구분해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요리로 따지면 음식의 짠 맛이 진간장의 짠 맛인지, 양조간장의 짠 맛인지, 함초소금의 짠 맛인지 미세하게 분간해낼 수 있는 감각.
좋아하는 건 적성이 아니에요. 까탈스러워야 적성이죠.
심리학자 김경일님이 하신 말.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띵 했다.
시작은 좋아서 했지만, 얼마 안 가 흥미가 떨어져 버린 것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시작했던 건,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면 지속할 이유가 사라졌다. 좋아하는 게 필요조건일지는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기만 하는 수준에서 끝나면? 그건 동호회에서 취미로 즐기면 된다.
하지만 내 업이 되려면… 까탈스러움이 필요하다.
나는 어디에 둔감하고, 어디에 예민한가
이 얘기를 들으니까 대학생 시절 생각이 났다.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모션그래픽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모션그래픽은 TV 프로그램 인트로에 나오는 그래픽 영상 같은거라고 보면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주위 친구들이 그쪽으로 가니까,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움직인다는 게 뭔가 재밌잖아- 싶어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그 때의 얄팍한 경험치 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적성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다행히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모션, 즉 움직임이라는 것 자체에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슉 움직이든, 뿅 움직이든, 치지직 움직이든, 파바박 움직이든… 솔직히 나에게 대단한 차이는 없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미세한 움직임들을 구분해 내는 역량이 부족했고 그냥 이것도 저것도 다 괜찮아 보였다… 까탈스럽지 못 했다. 까다로워질만큼 좋아하지 않았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항상 남들보다 레이더망을 세우고
예민하게 보는 것은 뭐였을까?
나는 움직임 그 자체보다는, 보여지는 것 이면의 심리에 항상 더 관심이 있었다. 공간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어떤 경험에서 좋은 인상을 느끼면, 내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팝업스토어에 가면 입구에 들어갈 때 보이는 러그부터, 도어벨 소리는 어땠는지, 어디에 어떻게 물건들이 배치됐는지 - 그리고 어떤 콘텐츠가 인기가 많으면 사람들이 어떤 심리를 자극해서 주목을 받는 건지… 통합적인 인상 속에 설계된 수많은 작은 요소들에 대해 떠들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분석충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ㅠ)
스스로의 예민함에 대해 곧바로 생각이 안 나더라도… 일단 둔감한 분야를 소거법으로 지워나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명확한 답을 찾아내진 못하더라도, 오답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이전보다는 더 또렷해질 수 있다. 내가 모션그래픽이라는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는 옵션을 지운 것처럼.
제네럴리스트의 뾰족함
평범한 보통의 사람 A는 무언가에 흥미를 느꼈다.
‘나는 이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파고들어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일정 단계를 넘어가면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소비자로서 즐기는 것과, 생산자가 되어 밥벌이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쉬웠던 것이 어려워지고 좋아하는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커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이렇게까지’라는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 게 문제지만…
일류 셰프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나처럼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잘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네럴리스트라면? 재능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이건 태도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지랄맞게 1%의 까탈스러운 천재가 될 필요는 없지만, 경쟁 사회에서 사업이든 크리에이터든 독립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아무리 제네럴리스트라도 최소한의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여기서 무기이자 생존을 위한 기본기가 될 수 있는 게 브랜딩과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네럴리스트의 뾰족함은,
T자형이라기 보다는…
볼록 철(凸)형 같다.
한 분야가 가파르게 두드러지는 T 대신, 약간의 뾰족함과 함께 탄탄한 기본기를 무기 삼는 제네럴리스트.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기에, 애매한 T가 되어버리면… 그 뾰족한 분야를 AI가 대체하게 되면 설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얇상한 [ T ] 에 비해 [ 凸 ] 이건 뭐랄까. 스모 선수마냥 듬직하다. 세상의 풍파에도 쉽사리 넘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서 하단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기본기는…
본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전략을 짜는 것(브랜딩),
그리고 그걸 타인에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콘텐츠)이 아닐까?
좋아하는 마음도 당연히 필요하고-
여기에 까탈스러움, 후천적 집요함, 기본기가
모두 어우러졌을 때,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한 것 같다.
참고가 된 영상 첨부! (배울 게 많고 재미있는 채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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