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레터] #1. 시작 공포증

2025-03-02
조회수 294

땅굴레터 Ep.1

시작 공포증

뉴스레터를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 동안 나의 To-do 리스트에
‘뉴스레터 작성하기’는 계속해서 등장했지만,

체크 표시되지가 되지 않은 채
날짜만 뒤로 옮겨질 뿐이었다.


오랜만에 또 새로운 걸 시작해보려고 하니
심리적인 장벽이 날 가로막았다.

뭐든지… 시작하는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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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시간이 없던 건 아니다.
내가 무슨 애 셋 독박육아를 하는 워킹맘이기를 해,
위급한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이기를 해…

누군가 당장 죽고 사는 문제에
내가 책임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기간동안 나 자신을 유심히 관찰해봤다.


분명 나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니까
이 경험에서 얻어가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더니 시작하지 못 하는 상태의
특징들이 몇 가지 보였다.


<시작이 어려운 마음 상태의 특징>

  •  새로운 정보를 찾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
  •  이것만 더 알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  실제 행동을 하는 것보다 정보 수집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  내가 받은 칭찬이나 인정이 과분하게 느껴진다.
  •  결과물을 드러내면 내 부족함을 들킬까봐 불안하다.
  •  시작하기 전에 이미 높은 기준을 세워놓는다.
  •  모든 걸 제대로 세팅해두고 시작하고 싶다.
  •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병을 낫게 하려면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하니
내가 왜 이런 것들을 겪고 있는지, 그 원인을 하나하나 따져봤다.



--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해'


뉴스레터를 시작하겠다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리서치였다.

초장부터 탄탄하게 기획하고
세팅해놓고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 시장에는 어떤 뉴스레터들이 있지?
다른 사람들의 발행 주기는 얼마나 되지?
콘텐츠의 포맷과 구성을 미리 짜 놓을까?
다른 사람들은 비주얼을 어떻게 구성했지?
어떤 플랫폼을 통해 발행하는게 좋을까? 메일리? 스티비? Kit?


자료를 많이 찾을수록 내 시행착오가 줄어들거라 생각했다.

조금은 덜 헤매고, 약간은 더 빠른 길을 가고 싶다는 기대.


하지만 한달 쯤 되니 슬슬 깨달았다.

글을 작성하는 게 진짜 시작인데,
준비만 하느라 시작을 못하고 있다니.

첫 술에 배부르려고 하는 욕심이 날 가로막고 있었다.


더 좋은 선택과 현명한 결정을 하기 위한
각종 리서치는 탄탄한 기획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이 단계에서 정체되어버린 경우다.



어느 정도 인풋(IN)이 쌓였으면,
그에 맞게 행동이라는 아웃풋(OUT)으로
제 때 배출해줘야 한다.


모든 건강한 체계는 -
몸도, 환경도, 생산성도 -
IN & OUT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 연결고리가 막히고, 정체되면…
좋은 의도로 쌓은 것들도 독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
자기 의심, 핑계, 무력감 같은 것들.



특정 지점을 넘으면 그 다음 단계로 레벨업을 해야 하는데,
왜 이런 식으로 계속 정보만 수집하면서
낮은 레벨에 머무는 걸 자처할까?


스스로를 계속 들여다보니…
위험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평가도 받지 않아도 되니까.


꼭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내가 만든 무언가를
남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모든 순간에는,

혹시나 남들이 나의 부족함을 알아차릴까봐
불안해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

‘부족한 나를 들켜버리면 어쩌지?’


SNS에서 콘텐츠를 만들면서
내 활동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감사함이 당연히 더 크지만 한편으로는
‘나 생각보다 별 거 없는 사람인데… 기대를 저버리면 어쩌지?’
라는 다소 찌질한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심리학 용어 중에
‘임포스터 증후군’ 이라는 게 있다.

임포스터는 원래 '사기꾼'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마치 사기꾼처럼 느껴진다는 의미로,

남들은 나를 능력있다고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그만한 실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Image

재미있는 건, 실제로 실력이 부족한 사람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무서운 것처럼,
실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할 수 있는데..

오히려 실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더 예민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성공을 노력이 아닌 운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어떤 면에서, 이런 불안감은
오히려 건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항상 더 나아질 여지를 남겨두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그 불안에 잡아먹혀서,
지나치게 겸손하고 안전한 채로 머무르느니…
차라리 자만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빠르게 행동하고, 다치고 깨지면서
배우는 게 또 있을 테니까.


완벽주의라는 말은 이제
스스로도 지긋지긋할 뿐더러,

세상에는 자신이 완벽주의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제 그 단어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그냥 하루라도 빨리 내 부족함을 들켜버리는 게 낫다.


지금 모자란 만큼 발전하게 됐을 때
그 단차 자체가 스토리가 될 테니까.


이미 시작해서 결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심리적 저항들을 느끼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 저항을 극복해냈을 뿐이다.



--

레고식 사고를 하자


퍼즐과 레고의 차이가 뭘까?


퍼즐은 완성될 그림이 정해져 있다.
모든 조각들에는 정답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면 실패다.

면허나 자격증처럼 결과가 합격/불합격 이거나,
시험처럼 100점이라는 최대치가 정해져있는 있는 경우라던지..

답이 있는 문제 하나 하나에서 내가 잘 했는지,
못 했는지 체크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하지만 레고는 다르다.

같은 조각이라도 여기서는 꽃이었다가,
저기서는 기차가 되기도 한다.

같은 블록으로도 정답이 무한대가 될 수 있고,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연하다.


콘텐츠만 해도... 같은 주제로 영상을 만들어도
천 명의 크리에이터가 있다면 천 개의 스토리텔링이 나온다.

거기에 촬영 스타일, 편집 방식,
브랜딩까지 더해지면 그 조합은 무한대에 가깝겠지.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정해진 답이 없는데…

혼자서 상상 속 프레임을 만들고,
퍼즐을 끼워 맞추는 게 통할 리가 없다.


불특정 다수에게 내 작업물을 공개하는
크리에이티브 쪽이나,
너무 많은 변수가 있는 비즈니스에서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타인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영역인데,
그건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그러니까 계속 실험해볼 수 밖에 없다.

레고처럼 이렇게도 조합해보고, 저렇게도 조합해보면서.


--

+ 임포스터 증후군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던 영상 첨부 :>

▶️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임포스터』의 저자 리사 손 교수가 말하는 메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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