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레터] #2. 작게 살아남는 법

2025-03-09
조회수 339

땅굴레터 Ep.2

작게 살아남는 법


내가 계정을 만들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신경 썼던 게 하나 있다.


브랜드나 회사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오피셜한 느낌'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작은데 큰 척,
없는데 있는 척을 하면?


결국 진짜 크고 힘 있는 존재들과
무조건 지는 게임을 하게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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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사람에 더 주목하게 된다


경험덕후라는 이름을 정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여러 외래어를 조합해서 독특한 이름을 만들거나,
'스튜디오OO'처럼 조금 더 갖춰진
회사처럼 보이는 이름을 지을 수도 있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단순한 목표를 잡았다.

'이 계정 뒤에 사람 있어요!' 라는 인상을 주자.

이게 정답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 소비자 입장에서 느꼈던 걸 생각해봤다.


나는 점점 개인적인 것들을 더 눈여겨보고 있었다.



멀게 느껴졌던 브랜드였는데
창업자의 인터뷰를 본 후 그 브랜드에 애정이 생긴다던가,

평소 관심있던 품목도 아닌데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물건이라 괜히 관심이 간다던지.



실제로 쇼핑몰을 창업했던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브랜드 계정같으면 팔로우를 안 하거든?
그래서 우리는 가상의 개인 계정을 하나 만들었어.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착장샷을 입고
카페나 멋진 공간을 가서 일상 속 사진들을 자연스럽게 올렸어.

그런 식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는 기간을 가진 뒤에,
나의 취향을 담은 개인 브랜드 런칭 과정을 올리면서 빌드업을 했지."


몇 년 전 일화라, 요즘 이 전략을
그대로 쓰기엔 좀 어려울 순 있지만...


이처럼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브랜딩
앞으로 더 고도화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대기업 공식 채널들도 사람을 내세우려고 한다.

누가 말하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
공식적이고 정제된 말투 대신,
브랜드의 마케터가 직접 운영하거나
캐릭터와 같은 페르소나를 내세운다.


보다 날 것, 꾸밈없는 모습을 선호하는 트렌드 속에서
'지금이 크리에이터에 도전하기 좋은 시기'
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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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곳을 따라하려 하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간혹 소규모 자영업이나 스몰브랜드를 하시는 분들 중,
일부러 '큰 규모처럼 보이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대기업의 레퍼런스를 그대로 들고 와서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거나,

그 브랜드의 추상적인 느낌을
본인의 브랜드에 복사해서 '제 2의 OO'를 희망한다던가.


규모가 있는 곳과 얼추 비슷한 느낌을 내면,
더 신뢰를 줄 것만 같고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할 것 같으니까.



예전에 나에게 브랜드 디자인을 의뢰했던
한 클라이언트는 '샤넬 같은 느낌'을 원했다.

샤넬의 고급스러운 무드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문제는 그 느낌만 따라하고 싶어했고
(당연하게도) 실제로 샤넬만큼의 자본이나 역사,
제품 경쟁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샤넬을 샤넬답게 만들어주는 근본은
로고도 아니고, 톤앤매너도 아니다.

샤넬의 핵심 자산은 코코 샤넬이라는
인물의 서사, 그리고 110년이 넘는 역사인데...

비주얼만 따라한다고 사람들이 그걸 알아봐주진 않을 텐데.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느낌이라 안타까웠다.


오래된 브랜드에는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명성이 생기기도 한다.

짧은 생애를 가진 대부분의 브랜드에 비해,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로 그 생존 능력이 증명된 거니까.


만약 신생 브랜드가 헤리티지를 흉내내려 하면?
비유하자면 몸 관리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명품을 두르고 자랑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그 애매한 불일치에서 나오는 촌스러움.

사람들은 이 미묘함을 생각보다 직관적으로 캐치해낸다.


어쩌면 브랜드도, 사람도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기보다는
강점을 더 뾰족하게 만드는 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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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뉴스레터의 방향성을 정할 때도...
이런 맥락의 고민이 있었다.

시중에 뉴스레터 중 상당수는
정보나 실시간 트렌드를 알려주는데,
그런 곳들은 대부분 회사/팀 단위로 움직이는 곳이 많았다.


만약 내가 트렌드를 다룬다면?

솔직히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쫓아가는
속도나 정보력에서 회사들과 경쟁할 수 없다.


그들은 여러 명이 분업해서 정보를 취합하고,
팀 단위로 협업하며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나 혼자서 경쟁한다면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은
나만의 관점과 고민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생각을 전달하는 게 훨씬 어렵다고 느낀다.

정보는 외부에서 끌어오면 되는데,
내 생각을 쓰는 건 내 안에 있는 재료를
그대로 들켜버리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원래는 고민을 가까운 사람에게도 잘 말하지 않는 성향이라
저항감이 많았는데, 어떤 분이 나에게 해준 말이 힘이 됐다.


"경덕님 계정을 보면,
마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어렴풋이 의도했던 게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비유하자면 인디밴드 같은 포지션으로,
'숨겨져 있는 걸 내가 발견했다'는 감각.


인디밴드가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과
같은 방식으로 승부하면 질 수밖에 없지만,

친밀한 라이브 공연과
생생한 소통으로 승부하면
나름의 팬덤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뉴스레터도
개인적인 생각의 공유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 내가 겪은 경험,
 배운 것들, 그리고 고민하는 것들을 나누는 방식이다.




여기서 깨달은 건 '작은 규모'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담당자가 아무리 열심히 활동한다고 해도,
개인보다 개인적이기는 힘들다.


공식적 / 대량 / 빠름 같은 키워드에서는
개인이 기업을 이기기 어렵지만,

'진짜 사람의 진짜 생각'만큼은 개인이 이길 수 있다.


이건 AI 시대에도 적용될 것 같다. 

'이거, 회사가 아니고 진짜 개인이구나?'
'이거, AI가 아니라 사람이 쓴 글이구나?'
라는 감각이 더욱 가치를 가지지 않을까.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진짜 사람의 개성과 경험,
고민의 흔적은 더 희소해지지 않을까?


결국...

자본 없고, 인맥 없는 평범한 사람이 살아남는 방법은?

  • 더 작게 가는 것.
  • 더 개인적인 느낌을 주는 것.
  • 남들과 똑같은 스펙트럼에서 경쟁하지 않는 것.


작게 살아남으려면, 프로세스를 공유해야 한다.

덩치가 큰 곳에서는 하기 어려운 걸 하는 것,
그게 작은 개인이 생존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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